커리어, Connecting the dots/커리어 방랑기

일 vs 사람, 나의 사회생활에 영향을 준 사람들

Abinushka 2022. 10. 2. 16:24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3년 간 다니면서 5개의 팀과 6명의 팀장님들을 경험해왔다. 그리고, ‘일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사람이 중요한가’의 질문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분명한 것은, 일이 내 커리어의 모습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느냐는 나의 사회 '생활'의 모습과 태도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첫 팀을 선택할 때는, 일보다 같이 일하게될 사람을 먼저 보았다. 내가 당장 하고싶은 일이 분명하지 않았고, 일단은 훌륭한 팀원들을 아래에서 빠르게 배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택한 팀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함께 일했을 때 많이 배울 점이 많았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일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다른 팀을 선택하는게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값진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일하면서 느꼈던 '시너지'라는 느낌을 또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또, 그간 알게 모르게 어깨 넘어 쌓은 내공들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지금의 업무능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요즘에는 사회 생활을 결정짓는 또다른 요소인 '팀장'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조직의 목적에 맞게 팀의 방향을 제시하고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의 역할은 더할나위 없이 중요하며 사회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회바회, 부바부, 팀바팀이라는 말이 있듯이 회사마다 조직문화마다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조직 위계가 확실한 대기업에서는 팀장의 리더십이 '조직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면 6명의 팀장님들과 함께 했던 각 기간의 내 사회생활 모습은 확연히 달랐음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조직에서 나와 맞는 리더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어떤 환경과 리더십 안에서 어떻게 달라졌고 성장했는지를 이해해볼 수는 있겠다.

첫 번째 팀장님: 신입 팔불출, YES 맨


첫 팀장님은 대외적으로 이미지나 관계가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 신입사원 때 팀 OJT를 하는데, 팀원들을 어벤저스에 비유해 소개하는 모습을 보며 팀과 팀원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고 팀원들과 함께 일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정말 그때가 어벤저스 팀이었구나, 이 조합은 정말 역사적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분 한 분 정말 다른 관점에서 배울 점들이 많은 분들이었다.) 직책자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신입을 받아봤다는 나의 첫 팀장님은 첫 날부터 ‘Welcome’이라는 쪽지와 캔디로 환영해주셨다. 그리고 매번 조직 적응과 역량 향상을 위한 기회와 과제를 많이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나대신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해주시는 팔불출(?) 이셨다. 그게 부담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아끼고 챙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실제 실력과는 관계 없이 무엇이든 잘 해내는 똘똘한 신입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직책 레벨과 관계없이 일을 할 기회와 임원들 앞에서 직접 보고를 하는 자리도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YES맨이었던 팀장님은 실무적으로는 힘든 타입이었다. 방향에 맞든 안 맞든, 되는 일이든 아닌 일이든, 우선 OK였으니 실무진들에게 부담이 되곤 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고, 그 부담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첫 시작을 함께 해주신 팀장님으로서, 다신 받지 못할 그 챙김에 감사했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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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특별했던 점은 팀장님이 비건이셨던 것이다. 회사생활에서 가치관이 주된 포션이 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대학생활 꽤 오래 채식을 했던 나로서는 팀장님의 비건에 대한 가치관과 식생활이 너무 좋았다. 가끔씩 비건 간식을 수줍게 건네고 나눠먹으며, 광화문 근처의 비건 가능 식당들을 찾아다니면서. 물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플렉시테리언으로, 어느정도 사회생활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육류나 해산물 섭취를 했지만 적어도 팀장님과의 식사에서는 나의 식취향과 가치관을 언제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제안서 끝내고 팀원들 다같이 이태원에서 몽크스부처에 갔던 것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


남의 일인줄 알았던 조직개편으로 팀이 와해되면서 팀장님과 몇몇 팀원들이 떠났다. 나를 포함한 남은 팀원들은 바로 옆 팀으로 흡수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어떤 직책자나 조직도 개개인을 지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 다시 방향을 찾아 다시 내 길을 걸어나가야한다는 것을.

세 번째 팀장님: 소심한 마이크로매니저


팀이 바뀌고 두 번째 팀을 맞이하는 그 조직 변동 중간에 글로벌의 한 TF에 참여하게 됐다. (그래서 두 번째 팀장님과는 같이 합을 맞춰 일할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굉장히 마이크로한 관리자임을 들어왔다.) 그리고 4개월 간 다른 팀이 주관하는 TF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일시적이었지만 새로운 팀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갑자기 주어진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기도 전에 타 조직 및 임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의하고,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수많은 보고와 수명 업무들에 허덕였다.
팀장님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 모두 챙기는 업무 스타일을 가진 분이셨고, 예상되는 문제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쪽 보다는 일단 실행 후 결과에 따라 대응하는 쪽이었다. 업무 방향뿐만 아니라 처리에 대한 방법과 글자 하나하나를 챙기시는 꼼꼼한 분이셨다.
한 개인의 업무 스타일이나 리더십이 프로젝트나 팀의 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그런 꼼꼼함이 요구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았지만, 우선순위 없이 모든 것들을 같은 온도와 에너지로 챙기는 것들이 많았고, 하루 평균 12시간의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조절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떤 업무든 잘 해내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이런 자율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업무에 조금씩 적응해가며 나만의 업무 성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떤 환경이 잘 맞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수직적으로 주어지고 해야하는 내용도 이미 정해진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업무 범위와 진행 방식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이 맞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다. 즉, 마이크로매니징은 내가 스스로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일련의 과정들을 확 축소시키면서 업무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일의 재미나 흥미로움, 어려움을 상쇄시키는 느낌이다.

네 번째 팀장님: 전형적인 관리자


네 번째 팀장님은 전형적인 관리자였다. 실무 진행에 크게 관여하지도 않았고, 크게 대변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직에서 필요한 보고사항들을 챙기고, 업무의 output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정말 전형적인 관리자였다. 그리고 원거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접점이 많이 없었고, 그런 점에서 나의 업무 태도나 퍼포먼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섯 번째 팀장님: 일 잘하는 솔직/완벽주의자, 모두의 어드바이저


이번 다섯 번째 팀장님은 사실 배치 받기 전까지 잘 모르는 분이었으나,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팀장님들 중 처음으로 많이 배우고 싶은 분이었다. 처음엔 너무 솔직하고 회의적인가 싶다가도, 정말 해결해야할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줄 아는 분이셨다. 그만큼 일에 대한 애정과 애증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간접 경험으로 쌓은 실무 지식의 깊이에 놀랐다. 다른 유관부서의 일을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명확하고 자세하게 파악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문득 아래의 글이 생각났다. 아래 글에서 말하는 'ㅈ'형 인재가 바로 이 분이 아닐까.

남의 일을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는 이유

platum.kr

'전략'을 세우려면 회사 안에서의 일과 이슈, 우리 고객의 니즈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사업 실무자들과의 핑퐁을 할 때 이해의 괴리가 없도록 맥을 같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무단에서 하고 있는 일의 방향과 실제를 이해해야하고, 반대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할 때 전략방향과 실무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함께 일하는 과정도 더욱 수월했다. 질문할 거리를 계속 던져주셨고,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업무 피드백과 역량에 맞는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한편, 본인이 정한 기준이 확실하여, 많은 부분에서 직접 관여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부분이 많았다. 팀원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고 백업을 많이 해주셨던 터라, 이외 상위 직책자 분들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액션을 취해주셨으니. 물론,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가이드만 하고 위임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지만 말이다. (아직 초초 주니어인 나는 백업 없이 스스로 온전히 위임받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다.)

팀장님은 더 큰 일을 하기위해 자리를 옮기셨고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이런 부분들을 더 눈여겨보지 못했어서 더욱. 이렇게 가까이에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행운이다.



지금 나는 여섯 번째 팀장님과 함께 일을 시작한지 2주 정도 되었다. 팀이 일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어 새로운 적응을 또 시작했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 경험은 다양한 타인의 모습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어떤 누군가와 함께 일하게 되든, 그 안에서의 나를 이해하고 좀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너무 겁먹지 않기를.